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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9장 김인섭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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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9장              

 

 예레미야 19장은 어제 말씀을 통해 보신 18:1-12절에 언급된 토기장이의 옹기(오지병)의 비유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다시 남유다의 멸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우상숭배가 극심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옹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립니다. 이를 통해 남유다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멸망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절에 나타나는 ‘하시드 문’은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은 예루살렘 성의 동쪽 문으로, ‘태양문’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문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이어지는데, 그곳을 ‘도벳’이라고 말합니다. 이 곳은 바알의 신당이 있었고, 더러운 우상숭배들이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예언을 선포한다는 것은 곧 징계와 멸망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곳은 ‘살륙의 골짜기’로 이름이 바뀔 것이라고 예언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시는 남유다의 죄의 내용은 하나님을 버림과, 예루살렘을 불결하게 함과 잘 알지도 못하는 신들에게조차 분향하는 것과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 채움과 바알의 신당을 지음과 아들들을 번제로 불살라 바친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 도벳이 죽음의 골짜기가 되며, 유댜의 계략이 무효가 되고,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며, 시체가 짐승의 밥이 되고, 지나는 자의 놀림과 조롱거리가 되며, 대적에게 둘러싸여 포위될 때 자녀와 친구의 고기를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보다 더 비참한 모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죄의 심각성을 더 깊이 깨닫는 것이 신앙의 성장의 한 부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 이 아침! 토기장이의 그릇에 대한 말씀이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그릇 혹은 옹기는 오지병이라고 말합니다. 이 옹기는 흙으로 초벌 구운 위에 윤을 내기 위해 잿물로 입혀 구운 병 모양의 목이 좁은 도구입니다. 

 

이것은 잘못 만들어지면 고쳐 만들 수가 없고, 깨뜨려 버려야만 합니다. 또한 한번 깨뜨려지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남유다의 죄악은 고칠 수 없는 것이며, 힘없이 부서지는 옹기(그릇)과 같이 하나님께서 쉽게 남유다를 멸망시킬 수 있음과, 남유다의 멸망은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회복시킬 수 없는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묵상하신 18장의 ‘토기장이의 옹기’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본 장에 나타나는 옹기(그릇)의 상징은 그 주권이 남유다의 멸망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남유다가 지금까지 멸망을 당하지 않은 것은 그들 중에 ‘의인’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은 은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매일매일의 신앙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지니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대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 늘 항상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가운데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의의 열매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하루도 고단한 삶의 어려움과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나 자신을 온전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로서의 귀한 삶을 살아가시며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의의 열매를 거두어 나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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