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3장 | 김인섭 | 2024-1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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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3장
똑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가 되었다면 그것은 “언어폭력”입니다.
똑같은 사랑이라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위협을 통하여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되었다면 그것은 “성폭력”입니다.
이것이 ‘Me too운동’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일방적인 것은 온전한 사랑도 아니며, 올바른 훈계도 아닙니다.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폭력은 죄입니다.
성경에는 ‘음행’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물론 성경에 등장되는 ‘음행’의 의미는 육체적인 부도덕성과 관계된 것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요소로 차지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영적인 음행은 자기 자신에게는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할 뿐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 혼자 좋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우상을 위하여 자식을 불살라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행음하는 자들은 그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드라마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을 보십시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가정에 해악을 끼칩니다. 사람들은 그가 좋아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사람들은 육적인 음행의 발자취는 그래도 어느 정도 구분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음행의 발자취는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영적인 음행들이 곳곳에서 얼마나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되 그 자신의 몸처럼 사랑할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단지 이용만 하였습니다. 기생사랑이 그렇습니다.
기생을 찾는 남자는 그 기생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즐기기 위해서 나갈 뿐입니다. 영적인 음행도 그러합니다. 세상을 좇아가지만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기생 사랑은 아무리 사랑해도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이며 위장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생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기생사랑은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일시적이지만 그 달콤함에(44절) 자꾸 빠져들게 만듭니다.
위장되고 거짓된 사랑의 관계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나를 구원하신 유일하신 구원자, 전능하신 하나님과 온전한 사랑을 나누십시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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