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7:30~35 | 김상욱 | 2021-06-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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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오늘로써 세 번째로 창27장을 살피고 있습니다. 오늘이 클라이맥스입니다. 바로 ‘장자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2. 본론: 장자의 축복이란 무엇인가? 장자권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장자는 다른 형제들이 맡는 유산의 몫의 두 배를 받았습니다. 신명기 21장17절을 보시겠습니다.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그러나 에서가 뒤늦게 이삭에게 나를 위해 남겨둔 축복을 해 달라고 울부짖었을 때, 이삭은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고 대답합니다.(37) 장자에게 두 몫을 주어야 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어 버렸던 것입니다. 두 번째, 장자권은 가정의 제사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즉.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겼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관점에서 가정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는 의미입니다. 가정의 영적인 장자는 곧 그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꼭 아버지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여자들이 가정의 제사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어린 자녀가 가장 먼저 예수를 믿었다면 그가 바로 가정의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자권은 “언약의 계승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의 후손을 통해서 장차 다윗이 나올 것이며,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탄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장자권을 가진다는 것은, 이 거대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야곱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27:39-40절에서 이삭은 에서에게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을 합니다.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이삭의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바로 77년전, 창25:23에서 말씀하신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리브가는 계속 이 약속을 붙들고 있었지만, 이삭의 영안이 어두워져서 이 언약을 잊어버렸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3. 적용 및 결론: 장자권은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렇다면, 오늘날 장자권은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하고 적용해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장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예정하셨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그분을 영접하는 모든 자들에게 장자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한치의 착오도 없이 이루어져갈 것입니다. 우리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에서와 같이 망령되고 불순종한 자들이 된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앞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삭과 같이 영적으로 분별력이 흐려진 자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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