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8:2-9 "구원에 감격하는 신앙생활" | 김인섭 | 2022-0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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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감격하는 신앙생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감격해야 할 생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읽은 본문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초막절 명절의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성전에 가셨습니다. 초막절은 7일간의 명절기간 동안 첫 날과 마지막 날은 중요한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었고, 마지막 날 밤에는 축제를 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마지막 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 일제히 동쪽의 순결과 공의의 문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아침이 바로 오늘 본문의 그 아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벅찬 시간을 가졌을 것이고, 아직 성전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서기관(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순결과 공의의 문을 앞에 두고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께”대해 감격해 했던 사람들이, 바로 한 순간에 돌을 들고 여인을 죽일 자세로 돌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갑자기 예수님을 향해 질문이 날아옵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이 쳐 놓은 덫에 빠진 사람은 다름 아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그 자리에 있던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돌 던질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모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자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죄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간음은 현장을 목격). 그리고 예수님은 그 죄가 있는 사람들이 여인에 대해 정죄를 하고 있다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보면서 진정 원하신 것은 그 다음 구절에 등장합니다. 요 8:12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곧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삶입니다. 우리 자신이 기여한 것 없이 은혜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진행적이요, 궁극적으로 완성의 자리에 있다고 믿는 것이 장로교 교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해하는 구원에 대한 이해는 성경적으로 세 가지 시제가 있습니다.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이 있고, 지금 받고 있는 구원이 있고, 장차 받을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구원의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미 받은 구원을 칭의라 말하고, 지금 받고 있는 구원은 성화이고, 장차 받을 구원은 영화라고 말합니다. 이 모두다 구원이라고 하고, 이것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확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감정적인 기쁨과 마음의 만족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 가운데 우리를 미리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 사랑을 보여 주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구원의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도 감정적이고 마음의 만족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우리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며 감격하며 살아가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앙과 인격의 성숙되어 가는 성화의 구원과정이 중요합니다. 롬 10: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받은 자의 감격적인 신앙생활은 신앙과 인격이 성숙되어가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전하던 바울에게는 깊은 고민과 근심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머리와 지식적으로만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은사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신앙적으로 똑똑하다는 것과 성령의 은사가 있다는 굉장한 신앙적 자부심이 큰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고린도교회에 제일 큰 걱정은 자기가 한 것이 영적인 각성과 성숙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적 철학으로, 사상으로, 교인들이 인간의 이해로 이해할까봐 제일 걱정했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간음한 현장에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여러 무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인간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의 영혼이 깨어나야 하는 하나님의 간섭과 하나님이 일하심의 내용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이것을 하나의 머리와 지식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증명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이 걱정했던 현실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안산한길교회 성도 여러분!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의 감격적인 신앙과 생활은 무엇입니까? 이번 한 주간 깊게 묵상하시며 고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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